[MODU 요즘 뜨는 직업] 웹툰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웹툰을 만드는 사람들
K-콘텐츠의 OSMU(One Sours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영역에서 확대해 활용하는 것), 그 중심에는 웹툰이 있다.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 홈>, <이태원 클라쓰>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다수의 드라마가 메가히트를 쳤고, 인기 웹툰의 드라마화, 영화화 소식은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기대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고퀄리티’ 작품은 과연 작가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오늘은 웹툰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웹툰 PD부터 해외 웹툰을 한국에 소개하고 K-콘텐츠를 세계화하는 콘텐츠랩블루의 콘텐츠 전문가들을 만났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다양한 문화적 식견이 필요한 일”
코믹사업부 이재영 PD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국의 PD처럼, 한 편의 웹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작품의 방향성을 생각해 기획안을 구성합니다. 그 후 제작 일정을 스토리, 작화, 채색, 편집 등 각 제작팀에 요청하고 피드백을 관리해요. 연재 중에는 플랫폼에 작품을 업로드하고 작품 반응을 관리하고요. 작품의 색깔에 맞는 팀원을 발굴하는 것도 웹툰 PD의 일인데요, 그러다 보니 기획부터 연재 확정까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반이 걸리기도 합니다.
Q. 한 편의 웹툰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시작과 끝을 함께하시는데요. 웹툰 PD의 업무를 자세히 알려주세요.
먼저 초기 기획 단계에서 원작이 있으면 원작을 검토하면서 살려야 할 부분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세계관과 장소, 필요한 캐릭터, 캐릭터의 이미지를 분석해요. 설계도처럼 작품의 방향을 정하는 단계죠. 그리고 작품의 설계도를 작화팀, 배경팀, 채색팀, 편집팀 등 팀원들에게 제시하고 작업 스케줄을 조율합니다. 웹툰 PD는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 리디북스, 레진코믹스 등 플랫폼에 작품이 연재되도록 마케팅도 한답니다. 작품의 타깃 연령층과 장점을 어필해서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잡는 거죠. 그러려면 각 플랫폼의 특성과 요즘 트렌드를 알아야 하고요.
Q.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요?
가장 초기인 기획 단계인데요. 다른 작품과의 차별화와 함께 매력을 만드는 단계를 제일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 작품의 세계관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초기 설정에 맞도록 그에 따른 대사와 행동을 해야 한다고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고 있어요.(웃음) 독자가 가상의 세계에 푹 빠져 몰입해야 하니까요. 자연히 스토리와 작화, 편집 피드백을 하면서 초기 설정에서 엇나가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고 곱씹어 수정하곤 하죠.
Q. <접경지역의 동물병원>, <폭군의 보호자는 악역마녀입니다>, <미남과 야수>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하셨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즐거운 기억은 참 많은데, 유독 슬퍼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접경지역의 동물병원> 속 안락사 에피소드를 다뤘는데, 제가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마음이 찡하고 안쓰럽더라고요. 안락사시키는 캐릭터가 너무 추워 보여 담요를 추가로 그려달라고 한 적이 있네요.
Q. 세상에 없던 세상을 만들어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PD님만의 기획 비법이 있다면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고, 시도 써보고 영화나 여러 콘텐츠를 분석하면서 얻은 지식이 많아요. 예를 들어 영화의 미장센을 웹툰에 활용하면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로 보여 반응이 좋거든요. 제작진에게도 ‘멋있고 웅장한 분위기’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의 전투 장면 하나를 시안으로 제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요.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웹툰 PD에게도 여러 문화적 식견이 필요해요. 저는 아이돌 ‘덕질’을 했던 것도 모두 작품에 녹이고 있답니다.(웃음)
Q. 하나에 몰두하기보다는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게 좋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미리부터 학원을 다니는 등 전문 교육을 받는 것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웹툰 PD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하는 조별과제의 조장과도 같아요.(웃음)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면서도 남을 설득하는 소통 능력이 필요하죠. 분석적인 시각을 가지고 작품을 볼 줄 알아야 하고요. 저는 청소년 친구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길 바라요. 여행은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헤쳐나가야 하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스스로가 가진 편견을 깰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고요. 이것은 창작 과정과도 같습니다. 콘텐츠를 편식하지 않고 즐기며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땠을까’ 하며 상상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친구들이 웹툰 PD가 됐으면 해요.
한눈에 보는 웹툰 제작 과정
“콘텐츠에 대한 열정과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력이 필요해”
해외사업부 글로벌팀 유지호 팀장, 로컬라이즈 파트 백지희 파트장
Q. 콘텐츠랩블루는 <강철의 연금술사> 컬러 웹툰화로도 유명한데요. 해외사업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요.
유지호(이하 유)_ 콘텐츠랩블루는 제작사임과 동시에 배급과 제공 역할도 함께합니다. 해외사업부는 크게 로컬라이즈 파트와 글로벌팀 두 체제로 운영되는데요, 국내 웹툰을 해외로 유통하는 일을 기본으로, 여러 국내외 협력사와 플랫폼, 제작사와 협업해 웹툰을 수입해서 우리나라의 문화에 맞게 현지화하거나 새로운 웹툰을 만들어냅니다. 올해 내에는 태국에 지사 설립도 진행 중이고요.
백지희(이하 백)_ 대표적인 로컬라이즈 파트의 업사이클링 작품이 일본 스퀘어에닉스사의 <강철의 연금술사> 컬러 웹툰화예요.
Q. 단행본 흑백 만화가 스크롤 형식의 컬러 웹툰으로 재탄생하려면 거의 새로 창작하는 수준이어야 할 텐데요.
백_ 원본의 한 장 한 장 컷 배치를 세로 연출에 최적화하도록 다시 만드는 게 기본입니다. 먼저 가필 작업을 해요. 선화를 살리지만, 원본에서 말풍선에 가린 부분은 아예 새로 그려요. 그리고 흑백 톤 대신 채색을 하고요. 다음은 밑색 작업입니다. 기본적인 색상은 애니메이션을 참고하지만 가능한 한 다양한 색을 넣어 다채롭게 제작하려고 해요. 인물의 피부색도 여러 색으로 작업하고요. ‘스케치업’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작화팀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리기 때문에 단조롭지 않은 게 장점이에요. 그리고 명암 보정을 하는데요, 모바일 기기로 봤을 때 색이 더 밝고 강렬하게 표현되도록 합니다. 또 중요한 신은 집중할 수 있도록 화려하게 효과를 주거나, 파편이 튀는 장면에서는 컷 밖으로 파편 조각이 날리는 등의 연출도 넣고요. 이후 말풍선과 효과음 등 편집을 하고 원작의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에 보내 피드백과 수정을 거치면 출판사에서 플랫폼에 제공해 연재를 하는 식입니다.
Q. 이렇게 보니 백 파트장님은 해외사업부의 웹툰 PD와도 같군요.
백_ 맞아요. 그리고 저는 제작자 입장이니, 마감 시간을 엄수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마감 시간은 신뢰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파트장이다 보니 직원들의 컨디션 관리도 중요합니다. 직원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고, 스케줄을 압박하면 그림에서 티가 나더라고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죠.
Q. 그러고 보면 해외에서 수입한 웹툰은 우리나라와 문화 차이가 큰 데다, 대사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 읽다 흥미를 잃게 되더라고요.
유_ 그래서 수출, 수입을 할 때는 각 나라에 맞게 현지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수출 작품의 지명과 인명을 나라의 정서에 맞도록 현지화하는 거죠. 물론 현지화는 어디까지나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돼야 해요. 글로벌팀 내의 각 담당자들은 항상 코믹사업부를 통해 작가님의 의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답니다. 이렇게 내부 확인이 완료된 작품이 해외 플랫폼에 무사히 서비스되면 정말 뿌듯해요. 수입 작품의 경우에는 번역 후 윤문(글을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하는 작업) 과정을 꼭 거쳐요.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도록 번역하려고 노력하죠. 대사가 자연스러운 작품이 독자 입장에서도 친숙해서 그런지 매출도 훨씬 좋답니다.
Q. 해외사업부에서 일하려면 유창한 외국어 능력은 필수적으로 갖춰야겠죠?
유_ 사업부의 중추로서 외국어 능력은 필요합니다. 해외 행사에서 현지 바이어와 소통할 때 현지 언어를 써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영어나 중국어보다 스페인어, 태국어 능력자들이 각광받는 추세죠. 그리고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합니다. 작품을 수출하고, 또 들여오려면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니까요.
백_ 그리고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 등 아티스트를 위한 툴을 다룰 줄 알고,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해요. 그러려면 일본,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웹툰을 모두 봐두는 게 좋아요. 각 나라별 정서와, 그 나라가 좋아하는 채색법에 맞춰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거든요.
Q. 웹툰 산업의 전망이 좋은 만큼 앞으로 더 다양한 직업군이 생겨날 텐데요.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 일하기를 꿈꾼다면 어떤 활동을 해보는 게 좋을까요?
백_ 제작팀에서 일하고 싶다면 일단 그림을 많이, 그림체를 다양하게 그려 어떤 작업이든 맡을 수 있도록 손에 익히는 걸 추천할게요.
유_ 웹툰 단행본도 많이 읽고, 플랫폼에서 결제도 해보면서 콘텐츠에 대한 친숙함을 쌓는 게 좋습니다. 넷플릭스 등 여러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속 애니메이션도 꼭 챙겨보시고요.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려면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는 게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1년이 아닌 5년을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세요.